좋은 글 모음 758

입동의 시 (임강빈)

땀 흘린만큼 거두게 하소서 손에 쥐게 하소서 들판에 노적가리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 주먹을 펴게 하소서 찬바람이 지나갑니다 뒤돌아보는 지혜를 주소서 ​ 살아있다는 여유를 가르쳐주소서 떨리는 마음에 불을 지펴주소서 남은 해는 짧습니다 ​ 후회없는 삶 이제부터라는 것을 마음 편안히 갖게 하소서 ​ (좋은글/ 좋은생각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12.08

촛불 켜는 밤 (이해인)

12월 밤에 조용히 커튼을 드리우고 촛불을 켠다 ​ 촛불 속으로 흐르는 음악 나는 눈을 감고 내가 걸어온 길, 가고 있는 길, 그 길에서 만난 이들의 수없는 얼굴들을 그려본다 ​ 내가 사랑하는 미루나무를, 민들레 씨를, 강, 호수, 바다, 구름, 별, 그 밖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본다 ​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밤, 시를 쓰는 겨울밤은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인가 ​ (좋은글/ 좋은생각 내용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12.02

네 잎 클로버 (엘라 하긴슨)

나는 해가 금과 같이 반짝이고 벚꽃이 눈처럼 활짝 피는 곳을 알지요 바로 그 밑에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 네 잎 클로버가 자라는 곳이 있지요 ​ 잎 하나는 희망을, 잎 하나는 믿음을 그리고 또 잎 하나는 사랑을 뜻하잖아요 하지만 하나님은 행운의 잎을 또 하나 만드셨어요 열심히 찾으면 어디에서 자라는 지 알 수 있지요 ​ 하지만 희망을 갖고 믿음을 가져야 하지요 사랑해야 하고 강해져야 하지요 열심히 일하고 기다리면 네 잎 클로버 자라는 곳을 찾게 될 거에요. ​ (좋은글/ 좋은생각 내용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10.23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나희덕)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 (좋은글/ 좋은생각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10.14

낙화유감 (조동례)

꽃이 해마다 제 빛깔로 피는 것은 잊혀지지 않으려는 간절함 때문이다 ​ 꽃이 해마다 제 모양으로 피는 것은 스스로 피어 스스로 지는 까닭이다 ​ 꽃이 해마다 제 향기로 피는 것은 다시 피어도 마음 바꾸지 않은 까닭이다 ​ 시방세계 종잡을 수 없이 피고 지는 사람아 아는가 꽃이 꽃이 되는 힘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란 것을 ​ (좋은글/ 좋은 생각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10.04

이별의 말 (오세영)

설령 그것이 마지막의 말이 된다 하더라도 기다려달라는 말은 헤어지자는 말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별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하는 것이다 ​ '안녕' 손을 내미는 그의 눈에 어리는 꽃잎, 한때 격정으로 휘몰아치던 나의 사랑은 이제 꽃잎으로 지고 있다 ​ 이별은 봄에도 오는 것 우리의 슬픈 가을은 아직도 멀다 기다려달라고 말해다오 설령 그것이 마지막의 말이 된다 할지라도 ​ (좋은글/ 좋은생각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09.29

숲길에서 (강세화)

금속성의 비정에서 잠시 벗어나 바람결 타고 흐르는 새소리를 들으며 풀잎새 한들거리는 숲길이고 싶어라 ​ 모든 가치의 척도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대체 무엇이며 삼라만상은 어떤 뜻인가 이 모든 잡다한 일들 그냥 잊고 살아라 ​ 하늘엔 구름 한 장 숲 사이로 흘러가고 소중하고 눈물겨운 한 순간을 위하여 바람도 맑은 소리만 가려듣고 싶어라 ​ (좋은글/ 좋은생각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