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의 시 (임강빈) 땀 흘린만큼 거두게 하소서 손에 쥐게 하소서 들판에 노적가리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주먹을 펴게 하소서 찬바람이 지나갑니다 뒤돌아보는 지혜를 주소서 살아있다는 여유를 가르쳐주소서 떨리는 마음에 불을 지펴주소서 남은 해는 짧습니다 후회없는 삶 이제부터라는 것을 마음 편안히 갖게 하소서 (좋은글/ 좋은생각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12.08
촛불 켜는 밤 (이해인) 12월 밤에 조용히 커튼을 드리우고 촛불을 켠다 촛불 속으로 흐르는 음악 나는 눈을 감고 내가 걸어온 길, 가고 있는 길, 그 길에서 만난 이들의 수없는 얼굴들을 그려본다 내가 사랑하는 미루나무를, 민들레 씨를, 강, 호수, 바다, 구름, 별, 그 밖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본다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밤, 시를 쓰는 겨울밤은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인가 (좋은글/ 좋은생각 내용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12.02
풀잎 (변승기) 이름 없는 들꽃 한 송이를 위해 더 깊이 뿌리내리겠습니다 순금의 햇살 한 웅큼에도 늘 감사하는 맘 버리지 않겠습니다 사랑은 하되 풋풋하고 허물없는 고만고만한 사랑 일구어 가겠습니다 바람 부는 날은 바람 데불고 늠름히 빈들 지키며 서 있겠습니다. (좋은글/ 좋은생각 내용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10.28
네 잎 클로버 (엘라 하긴슨) 나는 해가 금과 같이 반짝이고 벚꽃이 눈처럼 활짝 피는 곳을 알지요 바로 그 밑에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 네 잎 클로버가 자라는 곳이 있지요 잎 하나는 희망을, 잎 하나는 믿음을 그리고 또 잎 하나는 사랑을 뜻하잖아요 하지만 하나님은 행운의 잎을 또 하나 만드셨어요 열심히 찾으면 어디에서 자라는 지 알 수 있지요 하지만 희망을 갖고 믿음을 가져야 하지요 사랑해야 하고 강해져야 하지요 열심히 일하고 기다리면 네 잎 클로버 자라는 곳을 찾게 될 거에요. (좋은글/ 좋은생각 내용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10.23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나희덕)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좋은글/ 좋은생각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10.14
우두커니 (천양희) 희망이 필요하다고 얻어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불행이 외면한다고 오지 않는 건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묶는다고 튼튼한 건 아니었습니다 고통이 깍는다고 깍이는 건 아니었습니다 마음 한줌 쥐었다 놓는 날이면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되었습니다. (좋은글/ 좋은생각 내용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10.07
낙화유감 (조동례) 꽃이 해마다 제 빛깔로 피는 것은 잊혀지지 않으려는 간절함 때문이다 꽃이 해마다 제 모양으로 피는 것은 스스로 피어 스스로 지는 까닭이다 꽃이 해마다 제 향기로 피는 것은 다시 피어도 마음 바꾸지 않은 까닭이다 시방세계 종잡을 수 없이 피고 지는 사람아 아는가 꽃이 꽃이 되는 힘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란 것을 (좋은글/ 좋은 생각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10.04
이별의 말 (오세영) 설령 그것이 마지막의 말이 된다 하더라도 기다려달라는 말은 헤어지자는 말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별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하는 것이다 '안녕' 손을 내미는 그의 눈에 어리는 꽃잎, 한때 격정으로 휘몰아치던 나의 사랑은 이제 꽃잎으로 지고 있다 이별은 봄에도 오는 것 우리의 슬픈 가을은 아직도 멀다 기다려달라고 말해다오 설령 그것이 마지막의 말이 된다 할지라도 (좋은글/ 좋은생각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09.29
너에게 (서혜진) 내려 놓으면 된다 구태여 네 마음을 괴롭히지 말거라 부는 바람이 예뻐 그 눈부심에 웃던 네가 아니었니 받아들이면 된다 지는 해를 깨우며 노력하지 말거라 너는 달빛에 더 아름답다 (좋은글/ 좋은생각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09.23
숲길에서 (강세화) 금속성의 비정에서 잠시 벗어나 바람결 타고 흐르는 새소리를 들으며 풀잎새 한들거리는 숲길이고 싶어라 모든 가치의 척도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대체 무엇이며 삼라만상은 어떤 뜻인가 이 모든 잡다한 일들 그냥 잊고 살아라 하늘엔 구름 한 장 숲 사이로 흘러가고 소중하고 눈물겨운 한 순간을 위하여 바람도 맑은 소리만 가려듣고 싶어라 (좋은글/ 좋은생각 중에서) 좋은 글 모음 2021.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