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856

여름 바다로의 비상 (박태원)

바다로 나가보자 일상생활의 모든 나래 고이 접어둔 채 ​ 인생의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어 인생의 무게로 느껴질 때 ​ 우리의 시름을 파도에 던지고 모래위에 동심에 추억을 ​ 낯선곳에서 하루해가 저물어가고 지평선에 그림자 길어져 져녁 놀이 붉게 타 오를 때 소라껍질 주워 연가를 불러보자 갈매기의 날개짓이 우릴 부른다 ​ 오늘은 그리운 바다로의 일탈이다

아름다운 詩 2022.07.09

여름날의 풀꽃 (윤갑수)

가뭄에 허덕이다 널부러진 풀잎들 물벼락 맞은 대지는 고된 날들을 씻기우듯 가슴에 쌓인 설움을 떨군다 ​ 아침햇살에 그만 주눅이 들어 가슴 저미우던 한 여름날의 초원 ​ 날갠 뒤 들녘엔 앞 다퉈 대나무 자라듯 삐쭉삐쭉 하늘 향해 예쁜 미솔 짖는다 ​ 한 여름날 망초 꽃들이 밤하늘을 수놓은 작은 별처럼 세상에 잔별이 되어 하늘거리고 ​ 살랑 이는 바람에 여우별이 된 행운의 크로버 꽃이 긴 목 내밀어 하얀 얼굴 드리우니 임의 눈길 그대 마음에 머무네

아름다운 詩 2022.07.02

그 해 여름 (박인걸)

포위된 빌딩 숲에서 세월의 감각마저 잃었던 날 숨 가쁘게 우는 매미 소리에 잠든 추억이 기지개를 켠다 ​ 고향 언덕에 싸리 꽃 흐드러지고 산딸기 대추처럼 익을 때면 앞집 마을 누이는 산나리꽃보다 어여쁘고 ​ 연정 달아오른 소년은 여름 밤잠을 설치고 어쩌다 마주치는 날이면 부끄러워 얼굴을 돌리고 ​ 꾀꼬리 짝을 짓는데 봉선화 꽃 짙어만 가는데 그립다 말 못 하면서 속으로만 애태우던 그 해 여름

아름다운 詩 2022.06.27

그 해 여름 (고증식)

하교길 십리 길에 타박타박 사립문 들어서면 아버지 훌쩍 앞산에 들어 청마루엔 땡볕이 혼자 놀고 있었다 오늘도 밭고랑에 머릿수건으로 엎드렸을 엄마, 불러 보지만 매미소리 물고 간 토담 위로 호박잎만 하염없이 늘어져 있다 꿈결을 타고 오르던 밀잠자리 떼 울음 끝에 놀라 눈을 뜨면 어느새, 산그림자 그윽한 눈길을 내려 서늘한 이마를 짚고 있었다

아름다운 詩 2022.06.18

유월의 희망 (전수덕)

아름다운 꽃향기 떠난 자리 신록의 물결 일렁이고 짙은 녹음으로 무성해지는 싱그러운 유월 ​ 파란 하늘 뭉게구름 둥실둥실 자유롭게 노닐고 신선한 초록빛 바다 가슴 속에 출렁인다 ​ 살랑살랑 바람결에 은은한 솔향 폐부에 스며들고 초록의 상쾌함 핏줄을 돌고 돌아 온몸 구석구석 깨워간다 ​ 가슴 벅찬 희망의 유월 환하게 피어난 접시꽃 같은 설렘이어라

아름다운 詩 2022.06.04

이별의 눈물 (이해인)

모르는 척 모르는 척 겉으론 무심해 보일 테지요 ​ 비에 젖은 꽃잎처럼 울고 있는 내 마음은 늘 숨기고 싶어요 ​ 누구와도 헤어질 일이 참 많은 세상에서 나는 살아갈수록 헤어짐이 두렵습니다 ​ 낯선 이와 잠시 만나 인사하고 헤어질 때도 눈물이 준비되어 있네요 ​ 이별의 눈물은 기도입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길 바라는 순결한 약속입니다

아름다운 詩 2022.05.28